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澤田酒造の歴史と沿革

 

1. 知多半島酒造りと澤田家

江戸時代(1603年~1867年)、知多半島は日本有数の酒造りの地域であった。良質な水と米、そして北西から吹く冷たい風は、酒造りに最適な環境だった。商業環境も同様だった。当時、100万人以上の人口を誇る活気あふれる首都江戸では、日本酒の需要が非常に高まっていた。

澤田家は 活気のあった江戸市場への参入を決意した。現在学術研究の対象となっている澤田家の記録には、酒造りや販売に関する貴重な歴史的詳細だけでなく、醸造所が地元の海運業に関与していたことについても記されている。

 

 

2. 澤田酒造の起源


1792年、澤田儀左衛門(生年不詳)が尾張国で酒造りの許可を取得し、1833年には江戸に販売していた。1848年、儀左衛門の次男、澤田儀平治(生1820年)が澤田新店という酒蔵を創業した。これが澤田酒造の始まりである。

江戸時代(1603~1867年)には、知多半島で栽培された米を使用していた。明治時代(1868~1912年)には、三重県の雲出川流域で収穫された桑名米や一志米も使用するようになった。事業は順調に拡大し、儀平治は能登や越後を含む日本各地から多くの蔵人を雇い入れた。

 

 

3. 江戸及びその他の地での事業


江戸では、澤田酒造の主な顧客は有力な播磨屋と米屋であった。また、澤田酒造店は浦賀、清水、吉田、熊野などの都市にも定期的に酒を販売していた。当初は銘柄のない酒を販売しており、本格的なオリジナルブランドの開発は、1885年に登録商標制度が導入されてからである。1888年の『尾陽商工便覧』には、澤田醸造の銘柄として「共進会」が記載されている。

 

 

4. 安政の大地震を乗り越える


1854年11月4日、紀伊半島沖で大地震が発生した。家系図によると、この大地震により大きな桶から麹がこぼれ出た。家の柱は15~18センチほど沈んだ。蔵人たちは米を洗っていたところ地震に遭い、外に飛び出した。浜に干してあった木製の酒造道具を間一髪で助けた。地震の約1時間後に津波が来て酒蔵は大きな被害を受けた。幸運にもけが人はいなかった。

 

 

5. 澤田儀兵衛の船荷証券


江戸時代(1603年~1867年)には、儀平治の酒は船で都に運ばれていた。 明治時代(1868年~1912年)の初期には、事業が拡大するにつれ、小鈴谷と坂井の船が船団に加わった。当時、船には「宝」という意味の字が付けられることが多く、例えば「宝勢丸」、「宝力丸」、「宝栄丸」など、船の成功がいかに重要であるかを示している。

澤田船は、酒のほかにも、米やぬか、油といった伊勢湾沿岸の特産品、傘や常滑焼などを江戸へ運んだ。 また、帰路には江戸から大豆や肥料用の干鰯を運んだ。江戸に加え、北は岩手県釜石まで行き物資の取り引きを行っていた。

 

 

 

 

 

History of Sawada Sake Brewery

 

1. Chita Peninsula Sake Brewing and the Sawada Family


During the Edo period (1603–1867), the Chita Peninsula was one of the leading sake-producing regions in Japan. Good water, good rice, and chill winds blowing from the northwest meant physical conditions for sake production were perfect. So too was the commercial environment. The nation’s thriving capital, Edo, boasted more than a million inhabitants, and their thirst for sake was enormous.
The Sawada family were determined to tap into Edo’s flourishing sake market. The Sawada family records, now the subject of academic research, reveal valuable historic details not only of sake brewing and sales, but also of the brewery’s involvement in the local shipping industry.

 

 

2. Sawada Brewery Origins


In 1792, Sawada Gizaemon (dates unknown) acquired a permit to brew sake in Owari Province and by 1833, he was selling to the capital Edo. In 1848, Gizaemon’s second son Sawada Giheiji (b. 1820) started a sake brewery called Sawada Shintana. This was the beginning of Sawada Brewery.
During the Edo period (1603–1867), the brewery used rice that was grown on the Chita Peninsula. During the Meiji era (1868–1912), the brewery also began to use Kuwana rice and ichishimai rice harvested in the Kumozu River basin in Mie Prefecture. Giheiji’s business steadily grew, and he employed numerous brewers from across Japan, including Noto and Echigo.

 

 

3. Business in Edo and Beyond


In Edo, Sawada Brewery’s main clients were the prominent companies Harimaya and Yoneya. Sawada Brewery also regularly sold sake in cities such as Uraga, Shimizu, Yoshida, and Kumano. At first, the sake was unbranded, and the development of authentic, original brands did not begin until after the introduction of the registered trademark system in 1885. The Biyōshōkō trade book of 1888 names the Sawada family’s brand Kyōshinkai.

 

 

4. Surviving the Great Ansei Earthquake


On November 4th, 1854, a major earthquake occurred off the coast of the Kii Peninsula. Family records reveal that the huge quake caused the moromi to spill out of the large fermenting tubs and the pillars of the house to sink by about 15 to 18 centimeters. The warehouse workers were washing rice when the earthquake hit and ran outside. They saved the wooden sake equipment that had been drying on the beach in the nick of time. A tsunami arrived about an hour after the initial shock, causing heavy damage to the brewery. Fortunately, no one was harmed.

 

 

5. Sawada Giheiji’s Shipping Records


During the Edo period (1603–1867), Giheiji’s sake was transported to the capital by ship. In the early Meiji era (1868–1912), as business grew, boats from Kosugaya and Sakai joined the fleet. At the time, boats were often named with the Japanese character “hō,” or “treasure,” such as Hōsei-maru, Hōriki-maru, and Hōei-maru, indicating how important such vessels were to success.
In addition to sake, Sawada boats transported freight and luggage to Edo, including special products from the Ise Bay area such as rice, bran, and oil, as well as umbrellas and Tokoname ceramic wares. On the return journey from Edo, the ships brought soybeans and dried sardines for fertilizer. In addition to the capital, Sawada traded as far north as Kamaishi in Iwate Prefecture.

 

 

 

 

 

泽田酒造的历史

 

1. 知多半岛的清酒酿造与泽田家族


在江户时代(1603–1867),知多半岛是日本主要的清酒产地之一。纯净的水源、优质的大米以及从西北方向吹来的寒冷海风,为清酒酿造创造了理想的自然条件。当地还具有优越的商业环境。当时日本繁荣的首都江户(今东京)拥有超过一百万居民,民众对清酒的需求量巨大。
泽田家族决定打入江户蓬勃发展的清酒市场。泽田家族的记录如今已成为学术研究的对象。这些资料不仅记录了关于清酒酿造和销售的珍贵历史细节,还展示了酿酒厂参与当地航运业的情况。

 

 

2. 泽田酒造的起源


1792年,泽田仪左卫门(生卒年不详)获得了在尾张国(日本古代律令国之一,相当于今爱知县西部)酿造清酒的许可,在1833年,清酒已销往首都江户。1848年,泽田仪左卫门的次子泽田仪平治(1820年生)创立了名为“泽田新店”的清酒酿造厂,这就是泽田酒造的前身。
在江户时代(1603–1867),泽田酒造使用知多半岛种植的大米酿酒。到了明治时代(1868–1912),酿酒厂也开始使用来自三重县云出川流域的桑名米和一志米。泽田仪平治的生意稳步增长,酿酒厂还雇用了包括能登(今石川县北部半岛)和越后(今新潟县)地区等来自日本各地的专业酿酒师。

 

 

3. 江户和其他地区的事业发展


在江户,泽田酒造的主要客户除了颇有实力的商家“播磨屋”和“米屋”,还会定期在浦贺、清水、吉田和熊野等城市销售清酒。最初的清酒没有品牌,直到1885年日本引入注册商标制度后,泽田酒造才建立了真正的原创品牌。1888年的《尾阳商工便览》(当地贸易记录)中记载了泽田家族的品牌“共进会”。

 

 

4. 在安政大地震中幸存


1854年11月4日,纪伊半岛的近海发生了一场大地震。泽田家族的记录显示,巨大的地震导致发酵桶中的醪液溢出,房屋的柱子下沉了约15到18厘米。地震发生时仓库工人正在洗米,见状后迅速跑到外面,及时挽救了正在海滩上晾晒的木桶和米曲用具。约一小时后海啸袭来,对酿酒厂造成了严重破坏。所幸没有人员受伤。

 

 

5. 泽田仪平治的航运记录


在江户时代(1603–1867),泽田仪平治的清酒通过船只运往首都。到了明治时代(1868–1912)初期,随着业务的扩大,小铃谷与坂井(皆为常滑的地名)的船只也加入了船队。当时的货船通常以代表财富的“宝”字命名,比如“宝势丸”、“宝力丸”、“宝荣丸”等,可见船只对事业成功至关重要。
除了清酒,泽田的船只还向江户运送货物和行李,包括大米、麸皮和油等伊势湾地区的特产,以及雨伞和常滑烧陶瓷器等。从江户返回时,船只会运回作为肥料的大豆和沙丁鱼干。除了首都江户,泽田家族的贸易范围还向北延伸至岩手县的釜石地区。

 

 

 

 

 

澤田酒造的歷史

 

1.知多半島清酒釀造與澤田家族


江戶時期(西元1603~1867年),知多半島因為有優質的水源、上等的米質,以及西北方清涼季風等絕佳釀造清酒的自然條件,成為日本頂尖的清酒產地之一;而這裡同時也有著得天獨厚的商業環境。當時全日本最繁榮的首都江戶(現在的東京)有超過百萬的人口,也讓清酒的需求量隨之變大。
澤田家族因而決心開拓江戶這個蓬勃發展的清酒市場。現在成為學術研究對象的澤田家族檔案,除了有珍貴的釀造及銷售清酒細節,更記錄了釀酒廠參與當地航運產業的豐富歷史資料。

 

 

2.澤田酒造的起源


西元1792年,澤田儀左衛門(生卒年不詳)在尾張國(日本古代令制國之一,位於現在愛知縣西部)取得了釀酒許可後,於西元1833年開始供應首都江戶清酒;西元1848年,儀左衛門次子澤田儀平治(西元1820年生)設立了釀酒廠「澤田新店」,成為現在澤田酒造的前身。
江戶時期(西元1603~1867年)的釀酒廠多半使用知多半島當地種植的稻米,而到了明治時期(西元1868~1912年)也開始使用三重縣雲出川流域生產的桑名米、一志米;當時事業穩健成長的儀平治,更延攬了日本各地包含能登、越後等地區的專業釀酒師。

 

 

3.江戶及其他地區的業務拓展


澤田酒造的主要客戶除了江戶知名的兩大商號「播磨屋」及「米屋」,還會定期在浦賀、清水、吉田及熊野等城市販賣清酒;當時的清酒都沒有品牌名稱,要直到西元1885年導入註冊商標制度後,釀酒廠才開始陸續發展原創品牌,而西元1888年的貿易名錄《尾陽商工便覽》,便記載了當時澤田家族的品牌「Kyoshinkai」。

 

 

4.安政大地震後的倖存


西元1854年11月4日,紀伊半島近海發生了大規模地震,當時正在倉庫中洗米的工人們飛快地逃到戶外,並在千鈞一髮之際搶救了海灘上晾曬的木製釀酒器具;第一次地震後1個小時海嘯來襲,徹底摧毀了整座釀酒廠,所幸當時並沒有人員傷亡。依據澤田家族的記錄顯示,當時的強震造成釀酒廠的柱子下沉約15~18公分,且釀造中的酒醪滲出大型發酵桶。

 

 

5.澤田儀平治的航運史


江戶時期(西元1603~1867年)儀平治主要是以船隻運送生產的清酒至首都江戶,而隨著明治初期(西元1868~1912年)業務擴張,運輸船隊中還加入了當時小鈴谷與坂井(愛知縣地名)的船隻;這些船隻多半會用日文漢字的「寶」命名,如寶勢丸、寶力丸及寶榮丸等,來代表它們在商業成功方面的重要性。
澤田的船隻載運清酒之餘也會運送貨物、行李至江戶,如伊勢灣地區的特產稻米、米糠、食用油,以及雨傘、常滑燒陶器製品等;而這些船隻從江戶返航時,則會載回大豆及農業肥料乾燥沙丁魚。除了首都貿易往來,當時澤田的商業網路更延伸到北方的岩手縣釜石地區。

 

 

 

 

사와다 주조의 역사

 

1. 지타 반도의 술 빚기와 사와다 가문


에도 시대(1603~1867)에 지타 반도는 일본에서 손꼽힐 정도로 유명한 술 빚는 지역이었습니다. 좋은 물과 쌀, 그리고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술 빚기에 최적의 환경이었습니다. 상업 환경 또한 좋았습니다. 당시 1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던 활기 넘치는 수도 에도(현재의 도쿄)는 사케 수요가 매우 높았습니다.

사와다 가문도 활기 넘치는 에도 사케 시장에 뛰어들기로 했습니다. 현재 학술연구 대상인 사와다 가문의 기록에는 양조 및 판매에 관한 가치 있는 역사적 상세 정보뿐만 아니라 양조장이 지역 해운업에 관여했던 사실도 남아 있습니다.

 

 

2. 사와다 주조의 기원


1792년 사와다 기자에몬(생몰년 미상)은 오와리 지역에서 양조 허가를 받아 1833년에 에도에서 술을 판매했습니다. 그 후 1848년 기자에몬의 차남인 사와다 기헤이지(1820년 출생)가 ‘사와다 신타나’라는 양조장을 엽니다. 이것이 사와다 주조의 시작입니다.

에도 시대(1603~1867)의 사와다 주조에서는 지타 반도에서 재배된 쌀을 사용했습니다. 메이지 시대(1868~1912)에는 미에현의 구모즈가와 강 유역에서 수확한 구와나 쌀 또는 이치시마이 쌀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은 순조롭게 성장하여 기헤이지는 노토와 에치고 지역을 포함해 일본 각지에서 많은 양조장 직원을 고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3. 에도와 그 외 지역에서의 사업


에도에서 사와다 주조의 주요 고객은 유명 회사인 하리마야와 요네야였습니다. 사와다 주조는 우라가, 시미즈, 요시다, 구마노 등의 도시에도 정기적으로 사케를 판매했습니다. 처음에는 상표가 없는 술을 판매하였으며, 오리지널 브랜드를 개발하게 된 것은 1885년 등록상표 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입니다. 1888년 ‘비요 상공 편람’에는 사와다 주조의 상표로 ‘교신카이’라는 이름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4. 안세이 대지진에서의 생존


1854년 11월 4일 기이 반도 해안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가문의 기록에 따르면 대지진으로 인해 큰 발효용 통에 담겨 있던 모로미(덧술)가 쏟아졌으며 집 기둥이 15~18cm 정도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직원들은 쌀을 씻다가 지진이 일어나자 밖으로 도망쳤고 해변에서 말리고 있던 얕은 통과 고지(누룩)용 도구를 간발의 차로 구할 수 있었습니다. 지진 발생 약 1시간 후에는 쓰나미가 몰려와 양조장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습니다.

 

 

5. 사와다 기헤이지의 선하증권


에도 시대(1603~1867)에 기헤이지의 사케는 배를 이용하여 도시까지 유통되었습니다. 메이지 시대(1868~1912) 초기에는 사업이 커지면서 고스가야와 사카이 지역의 배도 선단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배 이름은 호세이마루(寶勢丸), 호리키마루(寶力丸), 호에이마루(寶榮丸) 등 ‘보배 보(寶)’자를 많이 사용했는데, 이는 배를 이용한 해운업의 성공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짐작게 합니다.

사와다 가문의 배는 사케 외에도 쌀, 쌀겨, 기름 등 이세 만 연안의 특산품과 지우산 및 도코나메 도자기 등을 에도로 운송했습니다. 그리고 에도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콩, 비료용 말린 정어리를 싣고 왔습니다. 사와다 가문은 수도 에도와 더불어 북쪽으로는 이와테현 가마이시 지역까지 가서 상거래를 했습니다.